손열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북아 FTA 질서 현황
“중국 주도로 진행되어온 지역 FTA 네트워크 흐름에 미국이 TPP를 앞세우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 “FTA는 경제효과 보다 전략적 이익추구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국은 5년간의 진통 끝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체결하였다. FTA를 체결하고 나면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막상 한미 FTA 발효 뒤에 다가오는 FTA 국제정치 조류는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은 3월 15일 한미 FTA 발효에 이어 5월 2일 한중 FTA 협상개시를 선언하였고 5월 13일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한중일 FTA 협상의 연내 개시를 위한 준비작업을 서두르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에게 다가오는 여러 FTA 논의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이다. TPP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태평양 4개국(Pacific Four: P4)의 다자 FTA로 출발하였으나 호주, 페루에 이어 부시 (George W. Bush) 행정부 시기 미국이 참여하게 되면서 굉장히 큰 FTA로 아시아에 다가오고 있다. 그 이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도 TPP 참여의사를 밝혔으며 특히, 작년 11월에는 일본 노다(野田佳彦) 총리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에서 TPP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현재 사전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동아시아 지역 FTA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 중심의 FTA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일본, 한국이 각각 아세안과 FTA를 체결한 후 지역 다자 FTA 구상과 관련하여 아세안+3과 아세안+6 모델을 두고 역내 치열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중국이 아세안과 선제적으로 FTA를 체결하게 되면서 동아시아 FTA 논의가 촉발되었고 이어 중국은 마카오, 홍콩, 대만과 FTA를 체결하고 현재는 한국과 FTA를 논의하면서 지역 내 FTA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현재 동아시아 FTA 질서는 그동안 중국 주도로 진행되어온 지역 FTA 네트워크 흐름에 미국이 TPP를 앞세우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은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미중 네트워크 경합 또는 경쟁으로 발전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관세개혁뿐 아니라 제도개혁이 필요한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TPP에 중국이 가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하기에 사실상 중국의 TPP 가입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TPP를 내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은 이것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중이 FTA 질서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FTA가 단순히 서로 윈윈이 가능한 경제협력 조치가 아니라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단 FTA를 체결하게 되면 양국 관계증진 및 협력의 제도화 수준이 높아져 관계를 끊기 어렵기 때문에 FTA 체결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효과를 가진다. 가상적국과 FTA를 체결한 사례가 전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울러, FTA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며 따라서, FTA 정책을 고민할 때는 이러한 FTA의 전략적 특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이 TPP에 적극적인 이유도 단순히 대아시아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회복을 위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TPP에 포함된 국가의 절반 이상과 양자적으로 FTA를 체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TPP를 통해 아시아가 경제적으로 중국 중심 질서로 변화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의 FTA에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전체 수출의 24퍼센트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나 중국의 대한국 수출량은 전체의 7퍼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 시장을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미국을 견제함에 있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FTA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과 향후 동북아 FTA 질서 전망
“한중일 FTA 성사 가능성 매우 낮아 : ① 중일 전략적 경쟁, ② 일본 정치•경제 문제” “일본 : 한중일 FTA 카드로 TPP 가입 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계산” “중국 : 일본, 한국의 TPP 가입을 지연시키려는 의도”
한중일 FTA는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애초 미국, 중국, 유럽연합에 이어 일본과도 FTA를 체결하여 한중일 삼국 사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였다. 그런 와중에 예기치 않게 한중일 FTA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어 정상 간 합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중일 FTA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동안 한중일 삼국은 환경, 기술 등 매우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협력을 진행해 왔으나 그 가운데 실질적인 성과에 이른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그만큼 한중일 협력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비정치적인 이슈에서조차 한중일 삼국간 협력이 쉽지 않은데 무역과 같이 국내정치적 비용이 크고, 전략적 고려가 강하게 작용하는 이슈에서 삼국간 협력이 성과를 거두기는 더욱 힘들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중일 FTA 성사 가능성이 낮은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중일간 경쟁 요인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전략적 경쟁자 관계에 있는 양국이 FTA를 체결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중일간의 협력은 현재 매우 낮은 수준에서만 가능한 실정이다. 둘째, 일본의 정치•경제 문제 때문이다. 일본이 FTA라는 충격요법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점은 분명하나 일본 사회의 극심한 내향화, 1년마다 총리가 바뀌는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 국내 정치 이슈에 매몰된 일본 정치 담론 등은 일본이 중국과 한국이라는 굉장히 큰 무역 파트너들과의 협상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일본과 중국이 왜 이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한중일 FTA 논의를 제기하는가? 먼저 일본은 경제적, 안보적 이유에서 TPP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회복 및 “제3의 개국”을 위한 강력한 외부자극이 필요할 뿐 아니라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TPP의 진입장벽이다. TPP는 미국이 21세기 표준형 FTA를 추구한다고 공표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고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까지 예외 없이 포함된 높은 수준의 FTA를 단 한번도 체결해 본 적이 없는 일본 입장에서는 TPP에 참여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은 한중일 FTA 논의를 TPP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일정 부분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은 TPP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FTA 논의가 가능하나 TPP는 안 된다는 식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TPP는 호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일본이 TPP에 들어가게 될 경우 이는 동아시아 FTA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변화를 야기하게 될 것이며 한국도 TPP에 참여하지 않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 경우 중국은 엄청난 국내정치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TPP 가입요건을 충족시키든지 아니면 독자적인 네트워크 구축에 더욱 매진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사실 한국과 일본이 빠진 네트워크는 그게 어떤 형태이든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중국은 가능한 한 일본과 한국의 TPP 진입을 지연시키고 견제하면서 중국의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중일 FTA는 중국의 지연전략 카드로 볼 수 있다.
한국의 FTA 전략
“태평양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네트워크 병행 추구해야” “동아시아형 FTA 모델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국 입장에서 한미 FTA나 TPP는 태평양 네트워크의 일환이고 한중일 FTA는 동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태평양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네트워크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태평양 네트워크는 전술한 바와 같이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델로 동아시아를 네트워크로 엮기는 어렵다. 동아시아는 TPP가 처음 시작된 P4와 같은 개방경제국가들로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아시아 특유의 맥락적 특성, 사회적 필요를 만족시키면서 지역 통합을 이루어 내는 FTA 모델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의 FTA 전략은 동아시아형 FTA 모델 개발을 토대로 마련되어야 하며, 한중일 FTA도 이러한 틀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FTA 전략적 수를 손 따라 두는 방식으로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이 고민해야 할 동아시아형 모델은 첫째, 소득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갈수록 복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사회맥락적 특징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수출확대나 경제영토 확대라는 담론만으로 FTA를 추진하게 되면 대기업, 재벌을 위한 FTA라는 국내적 반발에 직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출 확대에 따른 이익을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는 국내적 보완장치 마련을 동반하는 FTA 모델이 필요하다. 둘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FTA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지역 내 개발도상국과 공생하는 FTA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중일 삼국이 각국의 전략적 이익만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역 내 이웃국가들을 배려하고 모범을 보일 수 있는 형태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무역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FTA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는 위기의식,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앞서가는 국가들을 따라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FTA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FTA 2.0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접근법, 즉 동아시아 각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 및 개발도상국과의 공생을 고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는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동영상 인터뷰 형식의 Smart Q&A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현안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원고는 인터뷰 내용을 김양규 연구원(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과 김하정 팀장(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이 정리한 것으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Smart Q&A를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