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조차 "경악할 만한" 일로 받아들여진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노 대통령은 "선거에 한두 번 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며 지방선거에 졌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정부.여당에 대한 탄핵"이라거나 더 나아가 "노무현당이 패배한 것"이라고 지적한 열린우리당 쪽의 반응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에게는 매우 의외의 반응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의 지적대로 지방선거 결과로 인해 그동안 추진해 온 참여정부 국정운영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방선거에 압승을 거뒀다고 해서 국회나 행정부를 주도할 권한의 위임이 한나라당에 넘어간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느 나라에서나 임기 중 실시되는 지방선거나 보궐선거는 중간평가적 속성으로 인해 집권당이 불리하기 마련이므로 그 의미를 다소 "할인"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이런 반응은 무척 실망스럽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정치적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노 대통령과 열리우리당에 표를 던졌던 지지자들의 이탈이다. 각종 여론조사가 확인해 주듯이, 많은 수의 "전통적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을 떠났고 심지어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다. 노 대통령의 당선에 감격해하고 탄핵에 분노했던 이들이 대거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건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정책 추진에 이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길게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번 선거 참패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지지층조차 설득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노 대통령의 언급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캐나다 멀로니 총리에 대한 것이다. 멀로니 총리는 1984년 캐나다 총선에서 보수당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을 22년 만에 승리로 이끌었고 88년 선거에서 재집권해 93년까지 재임했다. 84년 선거 운동 과정에서 멀로니는 자유당 정부의 재정 적자 문제를 공격했지만 임기 중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멀로니 정부 시절 재정적자 규모는 170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로 오히려 늘어났고 캐나다 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멀로니의 세제 개혁은 "역사"를 생각한 결단이기보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영국의 대처나 블레어, 미국의 레이건, 독일의 콜처럼 동시대의 민심과 함께하면서도 "역사적 업적"을 남긴 많은 지도자를 다 제쳐 두고 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멀로니에게서 역할 모델을 찾으려고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설사 멀로니의 부가세 도입이 캐나다 경제에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었다고 해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정책 추진으로 인해 이후 보수당은 커다란 정치적 궁지에 빠지게 됐다.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은 93년 선거에서 겨우 2석만을 건졌고 그 이후에도 20석을 넘기지 못하는 소수 정당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보수 세력은 분열됐다. 분열됐던 보수 세력이 통합해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하기까지 10여 년간 보수 세력은 값비싼 정치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혹시라도 캐나다의 경우처럼 노무현 이후 10여 년간 정치적으로 찬바람을 맞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우리나라 진보개혁 세력의 우려에도 노 대통령은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