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총리 체제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총리라는 이유 때문에 세간의 보다 큰 관심과 호기심 대상이 되는듯이 보인다. 여성일 뿐만 아니라 온화하고 부 드러운 인상 때문에 한 총리에게 이전과는 달리 통합과 포용을 중시하는 국정운영 스타일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우려 뒤에는 물론 첫 "여성 총리"라는 점도 고려됐겠지만 남성ㆍ여성을 떠나 한 총리가 국정을 이끌고 가기에 앞에 놓여 있는 현실 여건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부의 국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대통령 임기 초에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도 크고 새 정부가 일하도록 한번 도와주자는 공감대도 널리 퍼져 있다. 관료들 역시 긴장하고 새 정부가 제시한 변화에 적응해 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임기 후반이 되면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아마도 5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과 언론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몰릴 것이다. 이미 노 대통 령의 지지도는 30%를 밑돌고 있지만 그 때가 되면 더욱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 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단임제 하의 임기 말 현상이 나타나면서 각 행정 부서의 긴장감도 느슨해지고 이에 따라 정책추진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유력 후보군에 줄서기를 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다. 이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 한 총리가 조직 장악력과 업무 조정 능력을 발휘해 각 행정부서를 효 과적으로 관장하고 노무현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 레이스가 시작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여야가 본격적인 대결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야 각 정파가 사실상 "올인"하는 차기 대권 경쟁 국면에서 한 총리는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일도 종종 생길 것 같다.

 

대선 경쟁 과정에서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노 대통령과 차별성을 부각해야 하는 여당 후보 역시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자주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총리가 국회 인준 후 "야당과 여당, 국민과 함께 타고 가는 어울림의 항해"를 강조했지만 이러한 현실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한 총리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 처럼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난관을 헤치고 한 총리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신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자주 거론되어 왔지만 대통령제에서 총리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정도 는 사실 "대통령 하기 나름"이다.

 

총리 위상은 제도적인 것보다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 관계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실세 총리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노 대통령이 그에게 그런 정도의 커다란 신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노 대통령과 "천생연분"이라는 표현까지 했고 "임기 말까지 함께할 것"으로 생각 했던 이 전 총리에게 주었던 믿음과 애정이 실세 총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과연 노 대통령이 한 총리에게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고 역할을 맡길 것인 가 하는 점이 한 총리의 성공적 업무 수행을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이런 점은 임기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하다. 과거 대통령들의 모습을 돌 이켜보면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은 공식 조직보다 자신의 측근에게 크게 의 존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 총리는 의전 총리, 대독 총 리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미 두 차례 장관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지만 한 총리가 이번에 총리로 지명되는 데에는 여성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총리 한명숙"의 업적과 공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이뤄질 때가 되면 싫든 좋든 다시 "여성 총리"였다는 점이 고려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한 총리의 역할은 이제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