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방위"가 불법시위 이유 안 돼
정부, 합법시위에 더 귀 기울여야

 

동아시아연구원의 연구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결론을 보여준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는 집회.시위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국가와 정치권을 비판.견제.감시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한국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늘어나고 각종 질서 위반형 시위가 평화 시위를 크게 앞지르는 게 6월 항쟁 이후 19년을 맞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제도적 환경을 바꿔야 한다. 연구 결과에 나타나듯 불법 시위의 요구 수용 비율이 합법 시위에 비해 낮지 않다. 공권력의 개입 비율도 높지 않다. 이 때문에 거리 집회.시위가 더 효과적인 항의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불법에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주문만 할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즉 합법 시위가 불법 시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변화도 필요하다. 제도권 정당들이 국민의 의사를 적절하게 파악해 반영한다면 시민사회가 더 이상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태도 역시 변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갔다.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공권력에 맞서는 "정당방위"로 불법 시위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이젠 통하지 않는다.

 

지난 19년 사이 국민이 민주화 주도 세력에게 품었던 동정심과 채무감, 관용과 인내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거리 시위.집회와 대중 동원은 쉬운 의사 표현 방식이다. 하지만 다른 효과적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국민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시민운동의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김선혁 동아시아연구원 분권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