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EAI 프로젝트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집권 과정부터 정통성을 갖지 못한 대통령들이 그 죄과를 치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들도 비리와 무능,국정 실패의 낙인이 찍힌 채 물러나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은 "제왕적 대통령제" "대통령 무책임제"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책적 준비가 돼있지 않은 대통령들이 국정을 직접 처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실정(失政)을 거듭해도 임기 중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입버릇처럼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해왔다. 그렇지만 지금의 제도에서 대통령이 책임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하야(下野)밖에 없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金炳局)은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시리즈의 두 번째로 권한과 책임이 함께 할 수 있는 총리의 역할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그간 우리는 대통령제만 가졌지 이를 올바로 운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다. 대통령 본인도 그랬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직선제만 되면 모두 잘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의 대통령은 집중된 권력으로 독주하다 그 부작용으로 국정 운영에 실패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등장한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정부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의 통치 방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강력한 대통령 1인이 독주하는 양상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 결과 "권력의 사유화"가 심화돼 권력형 부정부패가 반복됐고, 이런 부정부패는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인물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저질러지는 양태를 보였다.
대통령이 일상 행정 업무를 총리에게 위임한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국방, 외교.안보, 통일 문제만 해도 민족의 장래를 위해 숙고를 거듭하고 온 정력을 다 쏟아도 모자랄 정도다. 대통령은 사소한 일상 업무의 부담에서 벗어나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 비전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 전략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에서 "고도 성장"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의 우선적 과제가 "민주화와 과거 청산"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IMF 경제 위기 극복과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국무총리는 내치 행정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사안별로 필요한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수시로 소집하고, 부처 간 협조가 필요한 부분에는 조정자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역할이 분담되면 행정부는 실질적으로 이원화돼 운용되고 분권화한다.
정종섭 서울대학교 교수
역대 국무총리는 대개 "대독(代讀)총리" "의전총리"다. 국정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고, 결정권도 없다.
대통령 대신 각종 행사에 참석해 원고를 읽는 게 총리의 주 업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33대에 이른 역대 총리 가운데는 발탁 배경이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실무형.실세형도 있었다. 남덕우(南悳祐.1980년 9월~82년 1월)총리는 재무장관.경제부총리를 역임해 경제총리로 불렸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지시에 "물가상승과 수도권 집중 심화 등 경제적 부작용이 크다"며 맞서기도 했다고 한다.
박태준(朴泰俊.2000년 1~5월)총리도 포철 신화의 주인공답게 벤처와 IT 산업 육성에 전력을 쏟은 실무형 총리로 꼽힌다. 최규하(崔圭夏.75년 12월~79년 12월)전 대통령이나 고건(高建.97년 3월~98년 3월)전 서울시장도 각각 외교와 행정전문가로서 실무형에 가깝다.
실세형 총리로는 누가 뭐래도 김종필(金鍾泌.71년 6월~75년 12월, 98년 3월~2000년 1월)자민련 총재가 대표격이다. 힘이 있는 만큼 모든 일을 쉽게 처리했다. 필요하면 절차를 따지지 않고 곧바로 장관들에게 지시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 시절 신현확(申鉉碻.79년 12월~80년 5월)총리도 과도기에 힘 빠진 청와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직접 장관들을 독려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강영훈(姜英勳.88년 12월~90년 12월)총리는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내각에 힘을 실어준 덕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경우. 당시 노동.학원문제 등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각에 대한 청와대 수석들의 섣부른 간섭을 막아줬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뚝심있는 총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방탄형 총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장 출신인 노신영(盧信永.85년 2월~87년 5월)총리와 김정렬(金貞烈.87년 7월~88년 2월)총리를 꼽을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노재봉(盧在鳳.90년 12월~91년 5월)총리나 밀가루 세례로 강경대 사건 파문을 일거에 뒤집은 정원식(鄭元植.91년 5월~92년 10월)총리도 여기에 속한다.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기용하는 덕망가도 있다. "얼굴마담"으로 불린다. 김상협(金相浹.82년 6월~83년 10월).이현재(李賢宰.88년 2월~88년 12월)총리 등이다. 덕망을 우선하다 보면 행정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